클리프가 1969년 내한공연 했을 때의 모습을 적어 보았습니다.
이미 36년전의 일이지만...
 
클리프, 한국에 오기까지
1964년 12월 24일 스카라 극장에서 더 영원스가 상영되면서 클리프 리처드가 한국에 상륙하게 된 것이다.
첫 개봉 때와 달리 명동극장에서 부터 학생입장가로 바뀌게 되면서 클리프는 단시간에 한국 10대 소녀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리고 1965년 초 청계천 5가에 있었던 미미 레코드샵에서 클리프 음반을 열심히 구입하던 여학생 7명이 모여 팬클럽을 결성하였다. 한국에서는 대외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펴기 시작한 최초의 팬클럽이 탄생되어진 것이다.
외국과의 교류도 별로 없었던 그 당시 문화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미국이 아닌 영국가수의 자료를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회원들은 첫 작업으로 일본 뮤직 라이프 편집장에게 일본에 있는 클리프 팬들과의 교류를 원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뮤직 라이프에 회원들이 실리자마자 일본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후 펜팔로 구입된 클리프 오리지널 음반을 방송국으로 가지고가서 라디오 음악프로 담당자로 계셨던 최동욱(DBS), 이종환(MBC), 피세영(TBC)씨와 조용호씨에게 틀어 달라고 했었다. 자연 방송국엔 클리프 자료가 풍부하게 되었고 클리프의 노래가 쉼 없는 전파를 타게 되었다. 그 다음 했었던 일이 양노원과 고아원, 그리고 벽지학교를 찾아가 봉사활동을 한 것이었는데. 팬클럽에서 봉사활동을 하게된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팬클럽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해가 전혀 안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불량스러운 여학생들의 단체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회원들은 친목도모를 위해 매월 회보발행도 하였고 매주 모임 때는 클리프 노래가사로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제목으로 시를 지어 보기도하였었다. 클럽 창단 1주년에는 클리프 얼굴이 새겨진 동판메달을 제작하여 판매한 이익금을 수원에 있는 감천장이라는 양노원에 기탁하기도 하였다. 클럽 창단 2주년에는 오스카 레코드 레이블로 15곡을 수록한 '크리프 리차드 최신 힛트 1집' 앨범을 발매하였다. 클럽 창단 4주년 때는 The Young Ones를 수입한 화천공사 직원을 통해 The Young Ones 필름을 빌려 경희대 강당에서 15회에 걸쳐 상영하기도 하였다. 클리프 데뷔 10주년 때는 '발렌타인 클리프'라는 책을 1,000부 발행하였었다.
비정기적으로는 클리프 사진을 인화하여 그 당시 학생 전용극장이었던 아데네 극장에서 클리프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판매를 하였었는데 호응이 무척 좋았었고 여기서 남은 이익금은 고아원과 양노원에 기탁하였었다.

여러 활동을 하면서 클리프 내한공연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67년 일본공연이 계기가 되었다. 클리프 일정 상 67년 내한공연은 어렵게 되었고 69년 두 번째 일본공연이 확정되었을 때 그 동안 클리프 내한공연 문제로 계속 교류를 해 왔던 한국일보 사업부에 계시는 김중기씨께서 드디어 성사를 시켜 주셨다. 우리는 이 분을 비롯하여 멋진 매너로 클리프 도착 때부터 떠날 때까지 보좌해 주셨던 정홍택씨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한국일보 장강재 사장님, 이 분들에게 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다.

<이 당시 우리들은 머리가 벗어지셨던 김중기씨를 데이빗(클리프 매니저 데이빗 브라이스가 대머리였음)이라 불렀고, 정홍택씨를 클리프 일행은 코리안 존(섀도우즈의 존 러스티의 형님이라고 장난을 하였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장강재 사장님은 주위 친구 분들과 오시려고 3번째 날 공연 티켓 로얄석 50장을 가지고 계셨었는데 그곳은 CFC 회원들이 앉아야 된다고 항의하자 막 웃으시면서 티켓을 내놓으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